2024. 9. 19. 07:50ㆍ카테고리 없음
월출산 자락에 있는 월출산 차밭에는 5월이 돌아 다니고 있다.
초록의 향연이다.
진정한 색깔.
빨주노(초)파남보에서 정확히 가운데 색깔이 초록 아니던가?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 중 가운데 파장을 차지 하고 있으니 이 색은 자극적이지 않다.
그래서 우리를 편하고 차분하게 하는가보다.
평지를 달리던 차밭의 연초록이 멀리 진한 초록의 월출산으로 올라가 블루의 색을 얻더니 흰구름 풀어 놓은 하늘이 되었네.
멀리 월출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주니 이 곳 차나무들은 포근하겠다.
그나저나 월출산은 참 잘 생겼네.
조선 세조 시절 김시습( 생육신의 한사람)은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
라고 노래했다 한다.
이 녹차밭 너머 저 산을 보니 김시습의 노래에 동의를 안할 이유를 못 찿겠다.
그림 가운데 자리 잡은 저 산에서 달이 뜬다.
그러니 월출산이다.
월출산 주변은 그림이다.
고려 시대부터 이곳 월출산에서 자란 야생 차를 이용한 차문화가 이어져 왔다고 한다.
근처에 있는 다른 차밭, 설록다원은 설록차를 만드는 태평양(주)에서 운영하는 곳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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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에서 아래로 내려 오니 이한영 생가와 이한영 전통차 문화원, 백운 옥판차 카페가 한 곳에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카페 손님은 우리 뿐이다.
백운 옥판차가 뭔지 궁금해 주문했다.
카페 사장님이 차 마시는 법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쇠퇴하던 차 문화가 이 곳으로 유배를 온 다산 정약용 선생과 초의 선사로 인해 부흥기를 맞았단다.
정약용 선생이 유배를 끝내고 상경할 때 제자들과 맺은 약속이 있다.
다산이 개발한 제다법으로 만든 차를 해마다 보내드리기로 했다는 것.
이 약속은 가장 어린 제자였던 이시현 선생의 집안에서 백 년을 넘게 지켜졌다고 한다.
참으로 멋진 약속이다.
차문화는 이시헌의 제자 이흠, 이흠의 제자 이한영에게 이어졌고 일제에게 차 문화를 뺏기지 않으려고 이한영은 최초의 조선 토종 브랜드 차 <백운옥판차>를 만들어 등록했단다.
이한영전통차문화원과 이한영 생가 백운옥판차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이한영의 고손녀 이현정 원장, 이 카페 여사장님이다.
이 카페 차는 재배한 차나무 잎이 아니라 월출산에서 야생하는 차나무 잎으로 직접 만든단다.
격식을 갖춰 제대로 차를 마셔보니 괜히 마음이 선비가 된 것 같은 착각도 한다.
요즘 세상은 <격식>이란 걸 타파해야 할 구습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나, 때론 <격식>이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기도 한다.
커피를 마실 때와는 뭔가 모르지만 멋과 맛이 다르긴 하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 일수도 있겠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참으로 완성된 인간인 것 같다.
억울한 누명 쓰고 18년 귀양 왔지만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 많은 저술과 제자들과의 학문 교류, 게다가 차의 제조법까지 연구 개발하지 않았는가?
이제라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법을 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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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서 15km 거리의 전라병영성으로 간다.
강진 전라병영성은 평지에 있는 성이다.
조선 태종 때 왜구의 침입에 대비키 위해 축조한 육군 총지휘부였단다.
성벽 안의 건물은 다 무너지고 인걸도 간데 없는 옛 성터에 적만감만 감돈다.
어디론가 모두 떠나고 시간만 남았구나.
이런 적막감은 다 떠나 보내고 세월이 외로워 하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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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성지 길 건너에 있는 하멜 기념관이다.
서양인 최초로 조선에 표류해 억류 됐다가 13년만에 탈출하여 네덜란드로 돌아 가서 하멜 표류기를 썼다.
약 350여년 후 네덜란드인 히딩크가 월드컵 4강을 달성하여 한국을 들썩일 줄을 하멜은 꿈에도 몰랐겠지?
하멜은 13년 억류 생활 중 약 6~7년을 이 곳 병영마을에서 살았단다.
그 때 하멜은 네덜란드식 돌담 쌓는 방법을 마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줬단다.
하멜 기념관 옆에 있는 병영 돌담 마을이다.
밑에는 납작한 돌로 15도 정도 눕혀 촘촘하게 쌓고 흙반죽으로 고정 후, 위층은 반대 방향으로 눕혀 쌓는다. 빗살무늬 형식의 돌담, 이른바 ‘하멜식 담쌓기’다.
돌이 남긴 빈틈은 흙이 야무지게 파고 들어 돌과 돌의 거리를 유지 해준다.
그래야 세월을 견딘다.
이 얼마나 멋진 흙과 돌의 협업인가
저 돌담에도 세월이 잔뜩 묻어 있구나.
저기에 묻어 있는 세월도 외로워 할까?
잘 모르겠다.
어쩌겠나.
돌담길은 그냥 놔 두고 이제 전주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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