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9. 09:38ㆍ카테고리 없음
군산 초입에 있는 청보리밭이다.
5월 중순에 접어들어서인지 청보리밭이 이제는 약간 황금색을 띄기 시작했다.
6월 상순 쯤에는 아마 보리 수확 시기일테니 곧 들판 전체가 황금색으로 바뀌겠지.
일렁이는 보리밭 저 멀리 메타세콰이어 숲이 병풍처럼 서 있다.
저 숲이 자연숲은 아닐텐데 조성 의도가 궁금하다.
이런 너른 보리밭을 만나는 건 국민학교 시절 이후 처음 인 것 같다.
이 청보리밭을 바라보니 국민학교 시절의 그 청보리밭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그런 기억이 내게 아직 남아 있었나?
잊고 지냈다.
여기에 오니 방아쇠를 당긴 듯 불현듯 깊이 잠자던 그 기억들이 꿈틀 거린다.
아련하다.
그러고 보면 여행이란...
잊어 버리거나 또는 잃어 버렸던 나(자아)를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에 부대끼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혹은 잃고 사는가
자기 자신까지 놓치고 사는 때가 많지 않던가.
오늘의 내가 잊었던 지난 날의 나를 만난다.
마치 낯선 타인을 만나는 것 같다.
하지만 각자의 시간을 살았던 다른 듯 같은 두 인물은 화해하거나 서로를 용서도 한다.
그리고 하나가 된다.
그래서 회복의, 힐링의 여행이 된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 가기 전까지 다니던 학교는 남한강가에 있었다.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개울가에는 5월의 아카시아 꽃 향기가 바람에 흩날렸다.
개울을 이리 저리 건너 따라 내려가면 개울은 남한강을 만나 합류하고 거기부터는 강가를 따라 학교로 간다.
줄 지어 선 키 큰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살랑대는 강가 길을 따라 산기슭 쪽으로는 온통 청보리밭이었다.
저 멀리 가고 있는 친구들은 청보리에 가려 몸통은 보이지 않고 일렁이는 보리 이삭 위로 머리만 둥둥 떠 가는 듯 했었지.
보리밭 저 끝 메타세콰이어 숲이 그 때의, 그 친구들 머리 같아 보인다.
강바람에 넘실대는 보리밭은 파도가 치는 것 같았고, 가끔 혼자 그 곳을 지날 때는 서늘한 기운같은 것도 느껴져 무섭기도 했다.
강은 좌우에 낮고 높은 산을 아우르며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그 시절 그 시간처럼.
그 때 그 어린 시절에는 왜 그리 시간이 더디 가던지.
그 이후로 보리밭을 직접 본 기억은 거의 없다.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러 가기 시작했고...
난 그 시절의 나를 빠르게 잊어 갔을테고 이 들판에 와서야 다시 만나게 된거다.
배고픔의 상징이던 그 시절 보리밭도 이제는 사람들이 찾아 추억을 남기는 장소가 되었나보다.
내가 추억에 젖어 있는 청보리밭에서 어떤 사람들은 추억을 만들고 있구나.
청보리밭 들판에서 웃음을 흩날리는 소녀들은 한 세월이 흐른 후 또 다른 보리밭에서 오늘의 추억을 회상 하겠지...
<젊은 웃음 흩어진 자리...
그 들녁에는 지금도 청보리 피어 나겠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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