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4. 02:12ㆍ한국기행
한국여행 40일째다.
약간의 피로가 온다.
부안의 변산 해수욕장에서 이틀간 충전하기로 했다.
조용하고 아늑한 해수욕장과 순한 바다가 몸과 마음을 충전하기에 제법 좋은 곳이다.
일몰의 광경은 언제 봐도 묘하다.
일출의 그것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대개 일출을 보는 사람들은 출발과 희망을 생각하지만 일몰을 보는 사람은 감상에 젖는다.
왜 그럴까?
나에게로 다가오는 것과 내게서 멀어지는 것의 차이 아닐까?
떠오르는 태양은 하루를 함께 할 시작, 희망으로 인식하지만
저녁 노을을 보면서 사람들은 헤어짐을 떠 올린다.
나는 여기에 남아 있는데 무엇인가는 저 너머로 사라지는구나.
헤어지지 않으려면 같이 따라가면 되겠지.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로 태양을 따라 가면 일몰은 없다.
이별도 없다.
슬픔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함도 우리는 안다.
멀어져 간 것들은 결국 저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른다잖은가?
차라리 모른다는 것이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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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숲으로 이름난 고창 선운산(도솔산)의 선운사로 간다.
5월 중순에 가니 도솔산 선운사엔 신록이 절정이다.
산사 뒷산의 동백군락은 붉은 꽃은 이미 다 떠나 보냈구나.
동백을 떠나 보내고서야 신록이 왔으리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의 잎들만 바람에 살랑거린다.
이 곳의 동백꽃을 보고 많은 이들이 시와 노래를 지었는데 대개는 이별을 주제로 한 것이란다.
동백꽃은 떨어질 때 잎이 하나하나 흩날리지 않고 꽃송이가 통째로 미련없이 툭툭 떨어져 버린다.
그런 붉디 붉은 동백꽃을 보며 사람들은 이별의 감상에 젖게 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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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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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의 노래가 참 아련하다.
송창식 가수는 선운사 동백을 보고 이 노래를 지었다.
트윈폴리오 시절부터 송창식 가수를 좋아했지만 이런 노래도 있는 것은 선운사에 와서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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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송창식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너무 늦게 오니 동백꽃은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여기가 선운사 아닌가?
지난 봄 떨어지던 동백꽃 생각하며 나도 몇 줄 남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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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김종석
무언가 한참을 응시하다 눈 감으면
얼마 동안 잔상이 남더라
그 잔상 잡으려
뚫어져라 응시하면
잔상은 더욱 빨리 사라지고 말더라
누군가를 생각함도 그러하더라
한참을 생각하다 눈감으면
잔상이 남더라.
이번엔 눈이 아니라
가슴엔지 어딘지
그런 곳에 남더라
그 잔상 지우려 하면
점점 더 또렷해 지더라
인연의 지문이 찍힌건지
그리움의 지문인지...
그대 없는 이른 봄날
하염없이 떨어지던 동백꽃
그런 곳에 남겠지
가슴엔지 어딘지
--@선운사 /2024/5/13, Js K--
변산해수욕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힐링이 될만한 곳이 꽤 있다.
번잡하지 않고 차분하고 자연이 살아 있다.
이 곳에서 이틀을 더 묵기로 한다.
https://photos.app.goo.gl/CA2g7vkVw33CX5K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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