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변산*부안_해안의 노래

2024. 12. 24. 02:17한국기행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 해안은 참으로 특별하다.

바다(물)와 육지(흙)는 자기 영역을 지키려 쉼 없는 몸싸움을  한다.

깍아지른 해안 절벽은 육지가 철벽 방어에 성공한 곳이다.

넓직한 모래해변은 바다가 우세승을 거두어서 수시로 밀물을 육지쪽으로 올려 보낸다.

물 반, 흙 반의 넓은 갯벌이 있는 곳은 어떤가?

두 세력의 타협의 산물이다.

같이 공존하는 곳이다.

 

변산과 부안의 해안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있다.

오늘은 변산 부안 해안을 따라 내려 간다.

땅이 지켜낸 변산해수욕장 근처 해안가 평지엔 바람을 덜 맞으려 키 작은 꽃들이 땅에 바짝 엎드려 핀다.

지혜롭다.

 

바다와 육지의 대결에 제3자인 인간이 자주 개입을 한다.

물의 허리를 뚝 잘라 방조제라 칭하고 땅을 넓혀준다.

물이 서운해 하겠다. 

방조제 둑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는 물의 절규로도 들린다.

아직 쌀쌀한 해수욕장엔 갈매기만 가끔 날아 다닌다.

해수욕철이 아니라 인적이 드물다.

그러나, 사람이 없다고 쓸쓸한 바다가 아니다.

대신 이 해변은 파도 소리로 가득 차서 더 풍성해 보인다.

사람 많을 때는 잘 안들리는 파도소리가 지금은 더욱 잘 들린다.

파도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려오다 제각각 시차를 두고 부서지며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

파도소리 배경삼아 갈매기의 노래도 간절하다.

오월의  해안이 부르는 노래가 서해 바다로 흩어진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에 인간이 개입하는 현장이 여기에 또 있다.

곰소염전이다.

바닷물을 데려다가 순수한 물은 태양볕으로 말려 하늘로 날려 보내고 소금만 남겨 인간이 취한다.

바다와 육지와 인간이 타협을 본 결과다.

그러고 보면, 바닷물을 빛으로 다 말리면 바다는 결국 소금만이 남는다는 것인가? 

그래서 <빛과 소금>이구나.

 

곰소염전 소금창고

낡은 소금창고를 보면 세월을 거꾸로 돌려 과거의 어느 때로 온 것 같다.

구한말이나 일제 시대로 타임 머신을 타고 온 느낌이다.

소금은 다른 물질의 부패를 막는 상징과도 같다.

그런데 그런 소금을 보관하는 소금창고는 왜 이리 부패해 가는 것처럼 보이는가?

모든 염전의 창고가 거의 다 이렇다.

참 아이러니다.

 

햇볕 세례를 받은 바닷물이 졸아들고 있다.

염전 가장자리는 액체에서 고체로 신분 세탁을 한 소금결정이 반짝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염전의 가운데에는 나무로 된  통로가 있고 그 위 레일로 소금을 담은 대차가 이동한다.

서해의 해안은 이 세상을 부패에서 구할 대항군으로서 소금을 만들어 내는 최일선에 서 있구나.

 

솔섬

솔섬이 막내처럼 해안에서 떨어져 있다.

몸은 물에 담그고 있지만 나무 몇 그루 키울 자리는 확보했구나. 

바위 위 몇 줌 흙에 뿌리를 내린 솔들이 대견하다.

격포항

고군산군도, 위도  서해안 도서와 낚시터로 떠나려는 배들이 격포항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자동차를 보면 별 감흥이 없다.

그런데 항구에 정박한 배들을 보면 누군가의 꿈을 실어 나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변산반도 격포해수욕장 근처의  채석강이다.

수많은 책을 차곡차곡 많이도 쌓아 둔 형상이다.

저 형상은 누가 만들었나

바다의 물이 바람을 등에 업고 파도가 되어 억겁의 세월을 단단한 바위와 씨름한 깊은 흔적이다.

물처럼 부드러운 것이 있을까?

그처럼 부드러운 존재도 하고자 하면 저런 조각을 만들어 낸다.

가장 부드러운 물과 가장 단단한 바위의 처절한 부딪침의  사건현장이다.

마치 현장검증 하듯 사람들이 샅샅이 살펴 보고 있다.

물과 바위의 치열했던 씨름터의 사건 현장에 사람들은  <국가지질공원>이란 타이틀을 준다.

물과 바위의 치열한 싸움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이 와중에 이 전쟁 덕에 먹고 사는 존재들도 있다.

저 따개비는 바위에 몸을 붙이고 파도가 보내주는 물 속의 플랑크톤을 먹고 산단다.

양측으로부터 모두 도움을 받는다.

전쟁의 수혜자들이다.

생명 가진 것도 오묘하고 생명 없는 존재도 오묘하다.

   

이 세상에 전쟁과 혼란이 그친 적이 있었던가.

이 해안의 파도소리가 노래인지 절규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생명은 태어나고 이어지고 오늘도 또 꽃은 핀다.